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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산책] 경험 마케팅, 불필요한 노동일까 즐거운 체험일까?

더 많이 참여할수록 고객 만족도가 올라가는 이유

적절한 수준의 미션 수행은 브랜드 긍정 평가에 기여


원하는 향을 조합해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향수 공방, 사 먹는 대신 직접 만들어 먹는 타코야키 카페, 모두 예약 없이는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클릭 몇 번으로 다음 날 현관 앞에 주문 상품이 도착하는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된 이 시대에 시간과 돈을 들여서 불필요한 노동을 자청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글 | 서민경 텍스트공방 대표,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간편식 전문 기업 프레시지가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최현석 셰프의 IP를 활용해 론칭한 ‘쵸이닷: 직원食당’ 밀키트 2종 © 프레시지



알약 음식만 빼고 다 나왔다

어릴 적 보던 SF 만화책에는 언제나 화상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 청소를 대신 해 주는 로봇, 밥 대신 먹는 알약이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고 집에서는 로봇 청소기가 가구를 피해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일상이 펼쳐졌지만 어쩐 일인지 한 알만 먹어도 배가 부른 알약은 발명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알약 음식을 처음 언급한 이는 메리 엘리자베스 리스(Mary Elizabeth Lease)라는 여성 운동가라고 알려져 있다. 1893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맞아 미국기자연합은 여러 이름난 저술가들에게 100년 후 미래를 상상한 에세이를 의뢰해 신문에 소개했는데 이때 메리 엘리자베스 리스는 알약 음식이 세상에 등장하면 여성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인류는 미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알약 대신 배달 플랫폼이 성황을 누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열광하고 프로그램 출연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던가? 화면을 보면서 군침을 삼켰던 음식을 집에서도 맛볼 수 있도록 셰프들과 IP 협업한 밀키트 또한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다.

반조리식품인 밀키트는 누구나 음식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소분된 재료를 활용해 레시피에 따라 조리하면 금세 완성되는 터라 간단하게 데워 먹는 즉석식품에 비해 요리를 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가 건강까지 챙기는 기분이 든다. 마찬가지로 이케아에서 가구를 주문하면 플랫팩 형태로 납작한 패키지에 담겨서 배송되는데 이를 조립하는 것은 고객의 몫이다. 이케아는 플랫팩 덕분에 더 많은 제품을 화물차에 실어 나를 수 있어 배송비를 절감했을 뿐 아니라 조립하는 재미에 눈뜬 충성 고객 또한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과정에 관여한 고객이 자신의 결과물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심리적 현상을 ‘이케아 효과(IKEA effect)’라고 부른다.

이케아 효과라는 용어는 2012년 소비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이케아 효과: 노동이 애정으로 이어질 때(The IKEA Effect: When Labor Leads to Love)’라는 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소비자 행동 심리를 연구하는 마이클 I. 노튼(Michael I. Norton), 대니얼 모촌(Daniel Mochon),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이케아 상자 조립, 종이접기, 레고 놀이 활동을 관찰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이 자신이 만든 것에 더 비싼 값을 매기는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의 서두에서 이들은 흥미로운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끈 팬케이크 믹스 제품이다. 계란 가루가 가미된 내용물을 물과 섞어 구우면 팬케이크가 완성되는 형태였지만 너무 쉽다고 느껴서인지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에 소비자들이 직접 날계란을 추가하도록 레시피를 바꾸자 매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 뇌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감정

이렇듯 이케아 효과는 오늘날 수많은 브랜드에서 공들이고 있는 경험 마케팅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고객들의 참여가 구매로 연결되려면 경험의 수위를 잘 조절해야 한다. 너무 단순하고 쉬우면 흥미가 떨어지고 반대로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진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화제가 된 책 『경험경제』에서는 1997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문을 연 ‘빌드어베어 워크숍(uild-A-Bear Workshop)’을 경험 기반 비즈니스 사례로 소개한다. 매장 이름 그대로 고객들이 테디베어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인데 인형의 외형 선택부터 메시지 녹음, 솜을 채우고 꿰매기, 이름 짓기, 옷 입히기 등의 체험을 단계별로 세심하게 설계했다. 나만의 인형을 가지고 싶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빌드어베어 워크숍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재는 해리포터, 스타워즈, 디즈니와 협업하며 전 세계 4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완구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날이 갈수록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브랜드를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곳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나 판매 대신 체험을 강조한 팝업 스토어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거기에 더해 요즘 브랜드들은 자체적 커뮤니티 활동을 조직해 자연스럽게 잠재 고객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나이키 런 클럽, 룰루레몬 스웨트 컬렉티브(Sweat Collective), 코오롱 스포츠 솟솟클럽 등이 바로 커뮤니티를 활용한 경험 마케팅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뇌과학자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일 것이라는 가정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신경마케팅의 선구자 한스게오르크 호이젤(Hans-Georg Hausel)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는 뇌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신피질(사고력과 이성을 주관하는 영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이제는 변연계(감정과 기억을 주관하는 영역)가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변연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돈을 건 카드 게임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결정하기까지의 단계, 그리고 사용 단계에서 즐거운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적절한 수준의 미션을 달성한 고객이 느끼는 성취감은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케아의 DIY 가구를 조립하는 과정이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운 경험이었듯이 말이다. 


빌드어베어 워크숍과 KFC가 지난해 출시한 컬래버레이션 상품 © 빌드어베어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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