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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무역 전시회의 역사

놋그릇에서 반도체까지

전시회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된 배경

글.사진┃이형주

VM Consulting 대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는 최초의 국제 박람회로서 세계근대사를 바꾼 주역이었다. 반면 한국 경제 성장에 있어 전시회는 지금껏 기업들의 수출 확대와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등을 이끈 또 다른 씨앗이다. 개화기를 지나 지금까지, 전시회는 15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의 경제 성장과 수출을 도왔다. 이렇듯 전시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한국 경제 성장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전시회가 산업뿐만 아니라 전시산업 측면에서도 전방위적으로 한국기업들의 성장과 수출을 이끈 조력자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전시회는 단순히 제품 전시와 판매가 아니라 교류와 혁신의 무대였음을 상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1900년 대한제국, 최초로 파리 만국박람회 참가

1876년 우리나라는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개항기를 통해 외국과의 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특히 그 당시 한국 경제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에서 점차 상업과 산업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국제 사회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 필요했다. 3년 후 1900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는 바로 대한제국의 홍보 수단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고종 황제는 경복궁의 근정전을 재현한 한국관을 이끌고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관에서는 놋그릇, 비단, 도자기 등의 공예품과 악기 같은 예술품을 전시하며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국가와 교류의 싹을 틔웠다.

이것은 단순히 세계 박람회에 최초로 참가했다는 사실보다, 각국의 제품을 통해 서로 문화를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한국관 외·내부 모습 / 출처 <정동 1900>, 서울역사박물관

1929년 조선 박람회, 조선의 근대화를 세계에 알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세계와의 교류를 깨닫는 계기였다면, 1929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 박람회는 그동안 조선이 어떻게 근대화를 이뤘는지를 보여준 최초의 무역 전시회다.

1929년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일본은 지난 통치 기간의 성과를 집약해서 보여줌으로써 일본이 조선의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이러한 성과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박람회였던 것.

일본은 산업화를 이룬 조선을 보여줄 수단으로 조선 박람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박람회에 최초의 보험사인 ‘조선 생명보험주식회사’를 참여시켜 가입자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탑승 놀이기구 ‘유희 비행기탑’ 등을 전시해 연인원만 140만 명이 참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비록 일본의 통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조선박람회는 실질적인 제품과 사회적 모습을 통해 근대화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선 박람회 포스터와 유희 비행기탑 / 출처 서울SF아카이브


1960~80년대 전시회 통한 경제 부흥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 전쟁까지 험난하고 굴곡진 시대를 거쳐, 1960년대가 되어서야 경제 부흥을 위한 힘겨운 여정을 시작했다. 아직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성과를 공유하고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는데, 바로 산업전시회가 그 역할을 자처했다. 즉, 산업전시회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1968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한 발판이 되었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섬유, 전자, 기계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홍보할 기회가 부족했다. 한국무역박람회는 기회가 부족한 기업들이 해외 바이어를 만나 제품을 홍보하고 수출 계약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줬다.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 수출공단에서 약 2만 7천 sqm(평방미터)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었던 박람회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과 외교 사절단, 해외 바이어 등 2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는 최초의 국제행사이자 국민에게 수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킨 계기로도 작용했다. 한국 전시회가 하나의 산업으로 나아가는 것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하게 이뤄진 한국 경제 발전에 힘입어 전시회도 산업별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자전람회, 한국기계전시회, 세계우수상품전시회 등 모두 70년대에 처음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시회들은 국내외 기업들의 기술 교류 및 협력을 증진하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발굴하는 데 이바지했다.


1968년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장 전경


1980~90년대 전시회에서 전시산업으로 성장

각 분야의 산업전시회들이 기업들의 수출 및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되자, 전시회는 하나의 산업으로서 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9년 한국종합전시장, 즉 코엑스가 1만 sqm 규모로 개관하고 코트라와 한국무역협회는 전시관련 조직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계기로 다양한 규모의 국제행사 개최 수요가 증가하자 무역센터, 호텔, 도심공항터미널 등이 구축되었고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물적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이로써 전시 면적 확대와 더불어 기존 관 주도의 전시회를 벗어나 민간 영역에서도 주어진 인프라를 활용해 무역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언론사, 협회, 관계기관 등도 전시 주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울모터쇼, 서울에어쇼, 금속산업대전, 공작기계전시회 등 협회 단체와 민간 주최자의 역량이 커지면서 한국 전시회는 산업으로서의 틀을 본격적으로 갖추게됐다.


(좌) 1979년 COEX 개장행사 / (우) 개장기념 우표 출처 https://blog.naver.com/s5we


2000~2010년대, 중흥기 맞은 전시산업

1990년대 성장 토대를 기반으로 전시산업은 본격적인 중흥기를 맞게 된다. 신규 전시장이 수도권 및 지방에서 속속 개관하고 2002 한일 월드컵과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행사가 연이어 개최되며 전시와

국제회의 산업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이 이뤄져 한국전시산업진흥회의 출범, 코엑스 확장, 벡스코 등 지방전시장이 개관했다. 전시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특히 2005년 5만 sqm 규모인 국내 최대 전시장 킨텍스를 개관한 것은 국내 전시회가 국제적 규모의 전시회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렇게 전시장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개최전시회의 양적 증가는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Reed Exhibition Korea(현재 RX)를 비롯한 해외 전시 주최자가 한국 시장 확대와 더불어 국내에 진출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지속해서 세계가전전시회(CES), 국제의료기기전시회(MEDICA) 등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며 반도체, 디지털 헬스케어와 같은 혁신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로써 국내 전시회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전시회의 국제화, 전문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역량 강화

역시 급속히 이뤄졌다. 2008년 정부의 전시산업발전법 제정은 전시산업 성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이는 다시 전시장들에 증축 및 신규 건립과 인력 교육, 전시 지원 정책, 인증제도 활성화 등 선순환적 효과를 일으켜 전시산업의 중흥기를 이끌게 된다.


킨텍스 3단계 확장 모습


디지털 시대, 전시회 역할과 전시산업의 미래

주지하다시피 전시회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바이어와 셀러가 전시장에서 만나 제품과 지식을 교환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마켓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전 세계가 급속하게 모바일과 온라인 플랫폼 위주의 비즈니스로

변화하면서 오프라인 전시 비즈니스는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2020년 코로나 이후 비대면이 뉴노멀이 되면서 VR, AR,

메타버스 기술은 가상 공간에서의 비즈니스가 가능한 세상으로 급속히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키게 됐다.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도래했다. 디지털 세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오프라인 전시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전시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온라인 서비스가 줄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강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전시회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제공했던 기능과 성격은 분명 변화할 것이다.

이미 판매나 홍보의 기능은 아마존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체됐다. 심지어 비대면으로도 얼마든지 소통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화상회의 기술이 일상화되었다. 따라서 전시회의 미래는 판매나 홍보가 아니다.

전시회는 이제 온라인이 아니라 반드시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전시회는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시대에 굳이 왜 전시장에 가야 하는가.

결국 전시회의 미래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예술과 비즈니스가 만나고, 문화와 기술이 소통하는 융복합 시대에 전시회는 이제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할 때이다. 특히나 인구 소멸과 고령화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 지금, 한국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해답을 전시회와 전시산업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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