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소비 트렌드가 뜨고 있는 이유
과거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가 강했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주요 흐름을 이끌었다.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은 사회생활에서 약점으로 여겨졌으며, 외향성이 유리한 구조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IT 산업의 성장과 AI 기술 발전으로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리더나 창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 외향적 성향이 아니어도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적, 사회적 진화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고 내향성의 가치가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지금부터 이러한 트렌드 변화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글┃김용섭 소장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트렌드 분석가
출처 shutterstock
트렌드가 된 내향성 경제
‘내성적인 사람들이 미국 경제를 장악했다(The introverts have taken over the US economy)’는 도발적인 제목은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앨리슨 슈레거(Allison Schrager)가 블룸버그(Bloomberg)에 기고한 칼럼에서 나온 말이다. 슈레거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맨해튼정책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뉴욕에 거주하며 자신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향적 성향이 주도하는 경제 트렌드를 주장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급증하면서,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하이브리드 워크(Hybrid Walk, 혼합 근무)’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온라인 쇼핑 역시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에도 온라인 쇼핑의 강세는 여전하다. 특히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온라인 매출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온라인 소비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슈레거는 이러한 변화가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미국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미국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한 것은 활발하게 외출하고 외식하며 오프라인 쇼핑몰을 자주 방문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직장과 학교, 지역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어울리며 유행을 선도하고 소비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직장에서 빠르게 승진하고 리더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언제나 주변에 사람이 많고 다소 시끄럽고 행동반경이 넓은 이들은 바로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슈레거는 이제는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미국의 소비 트렌드와 내수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전체 소매 소비 중 온라인 쇼핑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이터와 뉴욕 레스토랑의 오후 5시 30분 예약이 급증하고 오후 8시 이후 예약은 줄어들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오후 8시에 저녁을 예약하면 식사와 함께 술자리까지 하고 나면 10~11시나 더 늦어진다. 데이터로 보면 일찍 만나서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젊은 층의 음주율 감소와 데이트 문화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미국 컨설팅기업인 갤럽에 따르면, 미국의 18~34세 청년들의 음주 비율은 2001~2003년 21%에서 2021~2023년에는 13%로 대폭 감소했다. 20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난 셈이며, 한국 역시 2030대의 음주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제 연인을 찾는 주요 경로는 데이팅 앱과 온라인 플랫폼이 되면서 이성을 만나기 위해 외출하거나 술집을 방문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이런 시대가 되니 조용하고 낯가림이 있는 소극적인 내향적인 사람들도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불리할 게 없어졌다. 다만 이런 변화에 주류업계, 유흥산업, 오프라인 소매업 등은 생존을 위해 변화를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
혼자 놀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들
사회적 활동과 야외 모임이 줄어드는 대신 집에서 즐기는 콘텐츠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유튜브와 틱톡에서 더 많은 영상을 시청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외식보다는 배달 음식을 선호하고 회식을 피하면서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 문화도 자리잡았다. 이제는 온라인 게임, 웹툰, 온라인 쇼핑까지 모든 것을 더 많이 집 안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반려동물, 반려식물, 심지어 반려로봇에 대한 관심과 지출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한 자기 관리, 건강 관리, 안티에이징, 패션 소비 등 개인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소비 영역에서 이러한 내향적 소비 특성이 반영되며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있다. 내려가는 소비 시장과 떠오르는 시장을 구분해 보면, 외향적 소비와 내향적 소비의 경계가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과거 ‘함께 어울려야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혼자서도 잘 노는’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집단주의가 퇴조하고 개인주의가 소비 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여행 트렌드에서도 나타난다. 조용한 여행(Silent Travel)이 확산되고 스텔스 캠핑(Stealth Camping)과 스텔스 차박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단체 여행은 감소하는 반면 솔로 여행이 급증하고, 조용한 걷기(Silent Walking)는 일상에서 명상과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정착됐다. 사운드 배스(Sound Bath)나 사운드 힐링도 확산되며 서울에서는 대화가 없는 침묵 카페와 침묵 술집이 등장해 유행 중이다. SNS에서는 조용한 숏폼(Quiet Short-Form)이 유행하고, 직장에서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과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가 퍼지며 회사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직장관을 드러내고 있다.
회식 문화는 사라지고 혼자 즐기는 ‘혼술’과 같은 트렌드가 확산되는 가운데, 혼자 여행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소비자들이 중요한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혼자 놀거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마케팅의 초점도 내향적 소비자와 내향적 경제를 중심으로 재설정되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이제는 조용한 사람들의 시대
‘조용한 사람들’은 더 이상 불리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내성적이고 소심하면 뒤처지고 손해본다고 여겼다. 내향적인 성향을 바꿀 수 있는 성격 개조를 내건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많았고, 맹목적 자신감을 불어넣는 자기계발 서적들도 잘 팔렸다. 인맥이 넓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으며, 직장에서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그들의 외향적 성격은 승진과 업무 평가에서도 유리했다.
이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외향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내향성에 대한 오해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와 직장 문화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성적인 성향이 더 이상 불리하지 않으며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는 곳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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